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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본다고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모 방송국 프로그램 중에
가상의 설정을 해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몰래 카메라로 방영하는 것을 보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용이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기
탈출법이었는데, 여기서 오래된 연인들의 연애 기간을 보니까 가장 오랫동안 만나온 커플이 300일이던가 그랬다. 300일이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다.
300일을 만나면 오래된 연인이라...
내가 너무 구식이 되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나보다) 젊은 친구들이 너무 앞서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웃기는 소리다. 이런 경우는 내 주변에서도 가끔 만나게 된다. 간혹, 후배들 중에도 나를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는
녀석이 있으니까.
그럴 때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예전 아니 불과 몇 해전만 해도 오랜 연인이라고 하면 최소한 4년 내지 5년을 봤는데 이제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를 오래되었다고 부른다. 게다가 권태기라니...
요즘은 만난지 몇 시간만에 애인이 될 정도로 초스피드 시대라고 한다.
아마도 뭐든지 '빨리 빨리'하려는 우리네 정서에 기인한 현상일 것이다. 게다가 쉽게 싫증을 느낀다.
예를 들어 휴대폰의 경우, 제품을 구입하고 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느끼고 신제품이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도 새로운 사양이 나올 때마다 업그레이드를 하기 보다 신제품을 사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전 세계에서 IBM 컴퓨터 판매지사가 유일하게 있는 나라가 우리 나라인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싫증을 잘 내고 신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강한 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연애를 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자꾸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매일 보면 식상함을 느끼게 되어있다. 부부를 봐라. 그들도 처음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처음의 감정은 사라지고 정으로 살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내 주변의 경우를 보면, 만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으면서
권태기를 느낀다는 친구들을 보면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커플들이 많다.
너무나 좋아서 매일 만난단다. 물론, 하루라도 안보면 미칠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매일같이 만나는 커플을
보면 조금씩 회의적인 느낌이 든다. 가끔 누가 상담을 요청해오면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데이트는 1주일에 한번만
하라.
얼마간은 정도는 그럭저럭 잘 버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대체, 매일 같이 만나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만나서 차 마시고 밥을 먹고, 영화도 보고. 뭐 가끔은 놀이 동산에도 가겠지. 그렇게 매일을 만나다 보면 결국 비슷한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이 될 것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그런 구태의연한 데이트에 권태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중엔 만나면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건 정말 위험 신호가 깜빡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중엔 만나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 드게 된다.
처음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데이트를 하는 경우와 시간이 흐르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드는 경우 중 어떤 커플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자주 만나게 되면 긴장감이라는 것도 없어진다. 사랑하는 사이에 무슨 긴장감을 운운하느냐, 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다.
긴장감이 풀어지고 상대를 너무 편하게만 여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막 대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둘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란 필요한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을 위해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외모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처음에는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예쁘게 혹은 멋지게 보이기 위해 의상에서부터 머리스타일, 악쎄사리 등등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을 쓴다. 그러다가 나중엔 어떻게 되느냐.
'머리스타일? 머리만 감고 비듬만 없으면 되지. 옷? 뭐 대충 눈에 띄는 대로 입고 나가지.' 이렇게 된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그것은 권태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외모뿐만 아니라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나 말투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이야기 한 바가 있지만 이것은 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랄까.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런 문제점을
동반한다는 것을 염두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트를 하는데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가 아는 데이트 방법이란 열이면 열, 비슷한 양상일 것이다. 만나서 차 마시고, 영화를 본다든지.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식사하러
가고. 가끔 교외로 나가는 정도랄까. 그것은 놀이 문화라는 것이 정립이 되지 않은 환경적인 요인이 큰 탓도 있다. 이런 데이트를 매일 한다고
생각해보자.
좋아하는 감정이야 변할 리가 없겠지만 늘 같은 방식이 반복되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건 사랑하고 안 하고. 그런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3년이란 시한부를 갖는다고 한다.
지금껏 떠든 내용이지만 그 말은 아무리 좋은 사람도 오랫동안
함께 있다보면 감정이 희석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 제안을 하겠다.
데이트는 1주일에 1, 2회 정도 하자.
대신 전화나
E-Mail로 대체하라.
그러나, 단순히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것으로 끝나면 그것은 하나마나다. 내 말은 1주일에 한
번 있는 데이트이기에 그만한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매일 만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스케줄을 짜고 이벤트도 생각해보고...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혼자서 해도 되고 서로 의논해가면서 데이트를 구상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럼, 300일을 만나도 권태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아주 파격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자주 본다고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권태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견고한 기둥처럼 변하지 않는 감정이란 쉬운 것이 아니니까.
서로의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긴장감도. 지금 서로에게 식상함을 느낀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방법을 바꿔볼 것을 권하고 싶다. 뭐, 나의 제안을 꼭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참고할 가치는 있지 않을까.
매일같이 만나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로 인해 생기게 될지 모르는 권태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