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7시 기상에서 간단한 아침식사후 스키장으로 향했다.
장갑도 사고, 신발,스키,폴대,썬그라스 모든 장비가 갖추어 졌다. 완벽하다. 거기에 패션까지도.
으음. 흠잡을 데 없군.
드디어 오전 9시 스키장으로 입성.

작년에 한번 타봤다는 봉일씨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다.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다.
아무튼 그후에 봉일씨 얼굴 본 것은 약 4시간 후였다. 코빼기도 볼수 없었다.
전날 “영례씨는 운동신경이 있어서 잘 탈겁니다.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하던 말이 내 귓가를 스쳐 스키장에 울려 퍼지는 듯 했다.
그래도 잠깐 브리핑을 하고는 갔다.
“신발에 몸을 기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뒤로 기대도 마찬가집니다. ”
그리고 몇마디 더 하더니..
“이제 타러 올라 가죠”
“헉”
“올라가면 다 탑니다”
“헉”
“저는 타고 오겠습니다.” 그리곤 사라졌다.

박종민씨가 자기를 따라오면서 걸으란다. 근데 걸을 수가 없다. 자꾸만 제자리 걸음만 한다.
간단한 스키동작을 배웠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방법. 속도 줄이는 방법. A자 만들기.
한 10분쯤 지났을까? 연습하라고 하면서 유유히 사라졌다. 다들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다.

주변에 아는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아이오타 식구들도.
여기저기서 초보자에게 스키 가리키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어서, 컨닝해 가면서 속으로 아! 그렇게 하는 거구나 하면서 조금씩 배워갔다.
50m 빰 삐질삐질 흘리며 올라가서 10초 만에 내려오구. 내 딴에는 그래도 기본기가 있어야 리프트를 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해서, 이런 식으로 1시간 정도 탄 듯 싶다.
스키를 즐기러 온게 아니라 운동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만큼 내가 연습할 공간이 줄어 들고 있었다. 부딪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피해서 타야 하는데, 문제는 방향 바꾸는 것은 배우지 않은 것이다. 볼링을 연상하면 된다. 스트레이트는 되는데 훅은 않되는 거나 똑같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 한분과 정면 충돌 했다. 아찔.띵.아찔.띵.

1 시간 후.
잘한다 소리는 못 들을망정 많이 좋아졌다 라는 정도는 되야 될텐데.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나는 나아질 기미는커녕 왜? 도대체? WHY? 스키장에 왔는지 ?
운동하러 왔는지?
이미 2살때 마스터한 걸음마를 다시 배우러 왔는지?
점점 짜증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들 어디 간거야?
종민씨~~관희씨~~봉일씨~~영복씨~~태규씨~~태현씨~~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결정을 내렸다. 그만 타자. 독학하려니 너무 어렵군.
스키장을 나와 입구 벤치에 앉아 햇빛을 쬐고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현재 시각 11시 30분.
약 30분 경과.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는 오뎅을 팔고 있었다. 따뜻한 국물이 이렇게 간절할 줄이야. 1000원만 있으면 먹을 수 있을텐데. 주머니 속에 넣은 손에 잡히는 것은 땀뿐이었다.
이렇게 비참할 줄이야. 스키장에서 넘어지고,엎어치고,부딪히고 해서 몸 망가져, 배 고파도 돈 없어 그 흔한 오뎅국물 한입 못 먹고,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약 30분 또 경과.
따스한 겨울 햇살이 온 몸을 감싸니 저절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가 때인지라 사람들이 점심 먹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모두들 본인이 있는 벤치로 모여들었다.
종민,관희,봉일,태현 -> 귀가 빨갛다. (스키를 즐기러 온 팀)
영복,태규 -> 땀이 흥건.(스키 운동하러 온 팀)

점심 식사후 다시 한번 스키장으로 입성.
관희씨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초급자 코스 리프트에 올라 탔다. 영복, 지현씨와 함께.
리프트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나는 넘어지기 시작했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것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나는 헤매기 시작했다.

관희씨의 구박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면을 바닥에 많이 대면 그만큼 속도가 붙는 거예요. 그러니깐 A자를 만들면서 무릎 안쪽으로 힘을 주란 말예요.”
시키는 대로 했다. 잘 않됐다. 근데 속도가 붙을수록 스릴를 느끼는 게 아니라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5m내려가서 주저앉고, 또 5m내려가서 주저앉기를 엄청하게 해댔다.

문제는 넘어졌을 때 혼자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는 것이다.
요령도 없었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급기야 신발을 벗고 다시 신는 방법을 계속 해댔다.
목소리 톤이 길어지면서 높아지기까지 한 관희씨
“신발을 왜 벗어요? 오히려 안벗겨진게 좋은거예요. 일어나는 연습부터 하세욧. 코너 도는데 있을테니깐 거기까지만 내려와 봐요.”
하며, 등을 보이며 앞으로 내려갔다.

5m내려가서 주저앉고, 5m내려가서 쓰러지고, 5m내려가서 넘어지고. 그럴때마다 뒤돌아 있는 자세로 내게 소리친다.
“A자 A자 A자 “
근데 나는 왜 자꾸 V자가 만들어 지는 원!!!
엄청 굴러 굴러서 관희씨 있는 데 까지 오긴 왔다.
“자 지금부터는 지그재그로 내려오세요.”

하지만 코너를 돌자 앞에 펼쳐진 것 저 아래 사람들이 작게 보일 만큼의 높은 위치와 경사진 곳이었다. 그래도 무서웠던 나는 더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주문을 외웠던 A자도 생각나지도 않고. 다리가 더 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내려갈껄 생각하니 아찔 했다.

참! 함께 올라온 영복과 지현씨는 내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세가 엉성해서 그렇지. 그래도 A자 만들면서 주섬주섬 내려간지 오래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점이다. 근데 아직도 나는 무섭다. 두렵다. 걸어서 내려가고 싶은 맘이 들정도로.
만일 그렇게 내려간다면 왠 쪽팔림!!!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또 5m가다 굴렀다. “A자 하라니깐요.”
또 5m가다 굴렀다. “A자” 이젠 존칭도 사라졌다. 막 반말이다.
또 5m가다 굴렀다. “A자” 이젠 소리치지도 않는다. 중얼거린다.
시선은 내쪽이 아닌 나에게 등을 보인 상태로.
미안함감에 “먼저 내려가세요. 제가 알아서 내려갈께요.” 빈말이었다.

“그럴래요” 왠지 반기는 목소리다.
“진짜 내려가시게요?” 내심 않 갔으면 하는 맘이 앞섰다.
또 5m가다 굴렀다. “A자”
또 5m가다 굴렀다. “왜 그렇게 못해요?” 엄청 구박이다.
또 5m가다 굴렀다. “A자”
나도 잘하고 싶다고요. 근데 않 되는 걸 어쪄냐구.
확 소문자 a 만들어 버릴까 부다.
“그냥 먼저 내려가세요. 제가 알아서 갈께요.”
해서는 않될 말을 내 뱉고 말았다.

“그럼 그러세요” 그러더니 S자를 그리면서 자기 먼저 내려갔다.
앞이 깜깜했다. 그 지점이 아까 코너를 돌아 경사가 시작되는 부분이었다.
거진 내려오지도 못한 지점이었던 거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넘어졌을 때 신발을 벗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 나아진 부분이다.
5m가다 굴르고,5m가다 굴르고,5m가다 굴르고,
5m가다 굴르고,5m가다 굴르고,5m가다 굴르고.

한 반쯤 내려 왔을까!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부른다.
“ㅇ ㅣ ㅇ ㅕ ~ ㅇ ㄹ ㅖ ~ ㅆ ㅣ “ 하면서 휙 지나가는 듯 싶더니, 내 바로 앞에서 구른다.
그냥 멋지게 내려가도 현찮을 판에 왜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지!!!
영복씨였다.

영복씨가 두번 타고 내려 올때까지도 나는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튼 내려오기는 끝까지 내려왔다. 안전요원한테 끌려내려오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내가 왜?도대체?WHY? 스키장에 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 하게끔 했다.
절대 다시는 리프트를 타지 않으리. 다짐을 했건만 잠시후, 초급자 바로 옆 상급자에서 유유히 내려온 박종민씨가 나타났다.
잡아줄테니 초급자코스로 다시 올라 가자고 잡아 끌었다. 다시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관희씨는 나 혼자 내버려 두고 그냥 가버렸다고, 종민씨는 그러면 않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그렇게 비열하게는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종민씨가 앞에서 폴대를 잡아주고, 자세 교정해 주면서 끝까지 내려왔다.
약 10분 정도 소요된 듯 싶다. 아까의 절반의 절반이다.

비로소 내가 스키장에 왜 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명쾌히 내려 주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박종민씨에 대한 칭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 듯 하다.
파장 무렵 다들 내 얘기에 동조하는 이가 많았다.
특히 영복씨, 지현씨는 말할 나위 없다.

개인적으로 올해 간만에 가져보는 짧은여행이었지만,
아무래도 긴 추억의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첫날의 윷판, 둘째날의 스키장에서. 모두모두 즐거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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